샤미센을 든 미인들과 충신장
은은한 미색 바탕 위로,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메고 길을 나서는 여인과 둥근 삿갓(아미가사)을 쓰고 함께 길을 걷는 여인의 자태가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여인은 삿갓 아래로 차분한 시선을 내비치며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 올리고 있으며, 왼쪽의 여인은 샤미센을 들고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밑에는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노닐고 있고, 배경에는 붉은 커튼과 후지산이 그려진 그림 병풍(또는 액자)이 걸려 있어 극적인 장치와 실제 인물이 조화를 이룹니다. 황토색과 검은색, 붉은색 의상의 세련된 색채 조화가 에도 시대 가부키 극의 한 장면 같은 풍류와 여인들의 우아함을 직관적으로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길을 나서는 두 여인의 조용한 동행 속에서는 운치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옵니다. 샤미센을 든 여인의 섬세한 손놀림과 삿갓을 쓴 여인의 고상한 이목구비, 그리고 발밑에서 귀엽게 움직이는 강아지의 모습이 화면 전체에 소소한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배경 속 후지산 그림과 실내 요소들이 액자식 구조처럼 중첩되며 한 편의 이야기극을 보는 듯한 깊은 몰입감과 아늑한 온기를 안겨줍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거장이었던 키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목판화 충신장 8단목(忠臣藏 八段目) 관련 미인도입니다. 우타마로는 미인화의 독보적인 대가로, 당대의 유명한 가부키 연극이나 고전 설화인 《충신장(츄신구라)》의 서사를 미인들의 일상 풍속에 비유하여 비유적으로 연출(패러디/미타테)하는 데에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작품이 제작된 18세기 말 에도 시대는 도시 대중문화와 연극, 풍속 판화가 크게 번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우타마로는 특유의 미려한 필치와 정교한 목판 기술을 바탕으로, 충신장 8단목의 여행길(미치유키) 장면을 당대 예인(게이샤 또는 예기)들의 세련된 모습으로 재해석하여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 우측 상단을 보면 제표 단자에 한자로 연작 및 극의 명칭인 '忠臣藏 八段目(충신장 팔단목)'이라 적혀 있으며, 좌측 하단에는 우타마로의 서명인 '哥麻呂筆(우타마로 필)' 한자 낙관과 출판인 방인이 정갈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당대 풍속화 거장 우타마로의 명작임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연극적 풍류와 미인의 자태를 간직하고자 했던 에도 시대 판화 컬렉션 문화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백여 년의 세월을 넘어 이 운치 있고 감각적인 미인 풍속 판화는 현재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중히 보존되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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