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라사키 우자에몽
어둡고 정교하게 식물 문양이 정갈히 깔린 배경 위로, 붉은 부채를 든 가부키 배우의 시선이 측면을 향해 날카롭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짙은 남색의 기하학적 파도 문양 유카타와 어깨에 무심히 걸친 하늘색 수건, 그리고 붉은빛이 선명한 부채는 인물의 세련된 에도풍 멋과 서늘한 기품을 한눈에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가부키 명문가의 배우를 모델로 한 우키요에 배우화(야쿠샤에)입니다.
도요하라 구니치카(Toyohara Kunichika)는 어두운 그늘 형태의 문양 배경과 인물의 정갈한 이목구비를 대비시켜 정적이면서도 미묘한 긴장감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손에 쥔 붉은 부채 위의 강렬한 문자와 세밀하게 그어진 대나무 살, 인물의 턱선과 눈매를 따라 흐르는 선명한 필선은 에도 대중이 열광했던 배우의 단정한 잘생김과 특유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화려한 동작 대신 인물의 표정과 자태만으로 무대의 일시 정지된 정적을 표현해내는 정교한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배우의 도도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무대 위 조명 아래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19세기 에도 시대 후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는 당대 최고의 스타일북이자 팝아트였습니다. 대중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어떤 패턴의 옷을 입었는지, 어떤 소품을 들었는지를 판화를 통해 확인하고 그것을 패션 트렌드로 소비했습니다.
이 판화를 그린 도요하라 구니치카(Toyohara Kunichika, 1835–1900)는 메이지 시대 우키요에 화단을 지배했던 마지막 거장이자 최고의 인기 화가였습니다. 사진 기술과 서양화가 밀려오던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전통 목판화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내며 당대 가부키 무대의 스타들을 독창적이고 강렬한 필치로 담아냈습니다.
배우의 매력적인 순간과 시대의 미학적 정수를 완벽하게 포착해낸 이 작품은 우키요에가 가진 대중적 화려함과 예술적 품격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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