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곰 습작 (Head and Forelegs of a Bear / Study of a Walking Bear)
'걷는 곰 습작'은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1480년대 초반 은필(Silverpoint)을 사용하여 종이에 그린 정밀한 동물 해부학 및 보행 연구 드로잉 작품으로, 개인 소장(Private Collection)을 거쳐 미술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대표적인 거장의 소형 드로잉 유산입니다.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정교한 은필 기법을 익힌 뒤 밀라노로 이주하던 시기, 레오나르도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신체 구조와 정교한 보행 메커니즘을 탐구했습니다. 당시 동물 그림들이 우화나 장식에 그쳤던 것과 달리, 레오나르도는 곰의 육중한 골격과 발가락의 접지 방식, 그리고 걸어 나갈 때 발목과 다리 근육에 가해지는 무게 중심의 이동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묘사했습니다. 은필 특유의 세밀하고 정교한 선과 좌측 방향 빗금(해칭)이 단연 돋보이는 이 스케치는 거장의 초기 동물학적 탐구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왼쪽을 향해 조용히 걸어 나가는 곰의 측면 전신과 발 연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곰의 머리와 코, 귀의 형상이 은필의 섬세한 선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주둥이 주변의 미세한 털 결까지 차분하게 잡혀 있습니다.
• 땅을 디디는 앞발과 뒷발의 단단한 뼈대, 그리고 날카로우면서도 정교한 발톱의 구부러짐이 해부학적 사실성을 드러냅니다.
• 화면 좌측 하단에는 곰이 걸어갈 때 다리와 발바닥이 접지하는 각도를 별도로 관찰한 보조 드로잉이 배치되어 보행 형태에 대한 다각도 연구 흔적을 보여줍니다.
• 몸통과 목덜미 주변에 그어진 레오나르도 특유의 왼손잡이 빗금(해칭)은 빛과 그림자의 부드러운 이행을 형성하며 묵직한 볼륨감을 선사합니다.
육중한 곰의 발걸음 속에서 자연의 생명체에 숨겨진 정교한 질서를 마주합니다. 거장은 종이 위에 차분히 그어 내린 은선으로 곰의 거친 털결과 단단한 골격에 온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느릿하지만 굳건하게 땅을 디디며 나아가는 곰의 눈빛에는 숲속 야생의 고요함과 생명의 존엄함이 함께 서려 있습니다. 발가락 하나, 털 한 터럭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 했던 거장의 집요한 관찰력은, 세월이 흘러 종이가 바랜 지금도 화폭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으로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이 드로잉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드로잉 중 몇 안 되는 개인 소장품으로, 경매사에서 대기록을 세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품고 있습니다.
2021년 크리스티(Christie's) 런던 경매에 출품된 이 작품은 880만 파운드(한화 약 140억 원)에 낙찰되며, 2001년 레오나르도의 '말과 기수' 드로잉이 세웠던 기존 경매 기록을 깨고 거장의 드로잉 작품 중 역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습니다. 우체통 정도 크기(약 7cm x 7cm)의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임에도 불구하고, 거장의 은필 필력이 다다른 완벽함을 입증하는 명작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스케치는 레오나르도가 1480년대 초반 진행했던 곰 해부학 연구의 결정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당대 기록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곰의 발을 직접 해부하며 인간의 발 구조와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신체적 유사성을 탐구하려 했던 거장의 독보적인 관찰과 철학이 깃든 이 드로잉은, 르네상스 자연주의가 다다른 정점을 증명하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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