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 날, 상념
따가운 햇살 아래 구름 한 점 없는 허공이 한없이 투명하게 드러난 아침이다. 서귀포의 하늘은 지나치게 명징하여 도리어 기묘한 압도감을 전한다. 육지를 떠나 이 섬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이 섬과의 첫 만남은 무모하리만치 관념적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8개월 전 겨울, 한라산 중턱 절물오름 인근의 개조된 농막에 짐을 풀었다.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2평 남짓한 공간, 연세 300만 원짜리 그 움막 같은 방이 나의 첫 거처였다. "자연인을 꿈꾸느냐"는 이웃들의 우려도 낭만이라는 착시 를 거두지 못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와 벽을 흔드는 원초적인 풍랑 속에서도, 나는 그것을 ‘비현실적 제주’가 주는 미학적 통과의례라 착각하며 견뎌냈다.

그러나 실존의 무게는 냉혹했고, 결국 두 달 만에 그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며 이곳 서귀포로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서귀포에 새로 자리를 잡고 시작된 작업. 그러나 환경의 변화가 가져다준 평온은 오래지 않아 다른 형태의 침식으로 이어졌다.
Initial의 흥분이 탈색되자 공간이 선사할 것이라 믿었던 침묵은 점차 음산한 존재감으로 변질되었다. 외부와의 차단은 자아를 확장하기보다 존재의 부재를 각인시켰다. 넓디넓은 맑은 하늘은 존재의 경미함을 조롱하는 듯했고, 밤마다 울리는 바다의 파동은 고립을 촉구하는 나직한 경고음처럼 들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용한 한적함은 나를 둘러싼 정적의 무게로 변해갔다. 캔버스 위에 얹히는 색채들은 점차 어두운 스펙트럼으로 흩어졌고, 완벽한 고독이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고립감은 천천히 영혼의 의식 체계를 압박해 왔다. 한라산의 가혹한 추위를 피해 도착한 이곳에서, 나는 형태 없는 정적이라는 또 다른 아포리아와 맞닥뜨리고 있었던 셈이다.
자아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며 서늘한 허무로 침강하려던 찰나, 발치에서 나직하게 번지는 온기가 감각을 일깨운다. 절물오름의 혹한부터 육지의 기억을 함께 품고 내려온 조그만 어린 강아지 건우.

녀석은 조용히 다가와 체온을 나누고, 어떠한 해석도 개입되지 않은 무구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과도한 관념의 굴레와 스릴러의 음영처럼 가슴을 죄어오던 정적이 아이의 단순하고 정직한 숨결 앞에서 가만히 해체된다. 가녀린 등줄기 아래로 느껴지는 규칙적인 박동은, 실체 없는 불안에 흔들리던 나의 존재론적 맥박을 비로소 지상에 안착시킨다.

지독하게 맑고 무더운 서귀포의 이 아침, 세상을 채운 서늘한 고립감 속에서도 내가 다시 정물처럼 붓을 집어 드는 까닭은, 그 칼바람의 농막에서부터 이 아늑한 고독에 이르기까지 내 곁에서 무언의 존재감을 증명해 주는 이 작은 생명의 서정적인 온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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